느림보의 과거와 현재의 고민 기록
느림보의 무엇이든 고민 상담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첫 번째 방문자는 과거의 느림보 한 분과 현재의 느림보 한 분?!
어떤 고민인지 들으러 가보시죠!
#고민 #졸업하고뭐할거야 #과정과결과
(본 글은 특정 집단을 대표하지 못하며
개인의 견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연구자 🍗]: 저는 요즘 헬스 PT를 받고 있어요.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라고 해서 닭가슴살을 왕창 먹고 있습니다. 닭가슴살 이모지가 없어 닭가슴살 대신 닭 다리를 선택했어요ㅎㅎ
[개발자 🍳]: 저는 후라이를 골라보았어요! 악동뮤지션의 <후라이의 꿈>이란 노래가 최근에 발매되었는데, 발매 전부터 많이 들었었거든요. 따뜻한 밥 위에 누워 자는 후라이가 되고 싶었던 고민 많던 옛날이 떠올라서 골라보았습니다.
[개발자 🍳]: 학과를 정해야 하는 데 하고 싶은 게 없었어요. 모두가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저만 혼자 뒤처지는 것 같았죠. 세상이 나에게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 하고 강요하는 것 같았어요. 노래 가사 속의 계란 후라이도 저와 비슷한 처지여서 가사를 곱씹었었죠. 계란 후라이가 그러더군요. "난 차라리 흘러갈래. 모두 높은 곳을 우러러볼 때, 난 내 물결을 따라갈래" 라고요. 저도 비슷한 마음이었어요.
[개발자 🍳]: 웃기게도 학과 결정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힘들었어요. (학과를 정하지 않으면 어떡하겠다는 건지... 나원 참!) 저는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결정 내리는 걸 두려워하고, 가능한 끝까지 결정을 미루는 타입이에요. 그래서 남들이 저에게 결정하라고 강요하는 것에 취약해요. "어떤 학과에 갈꺼야?" 이런 가벼운 인사 차례 질문이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저에게는 "어느 과 갈지 얼른 결정 내려야지!"와 같은 강요처럼 느껴졌어요. 이 질문이 졸업할 때쯤에는 "졸업하고 뭐할거야?" 가 되더군요. 그때도 여러 갈래가 있어서 (대학원, 취업 등등) 고민이 많았죠. 인생은 이렇게 고민과 결정의 연속인가 봐요!
[개발자 🍳]: 그 당시에는 꿈이 없으면 인생이 망한다고 생각했어요. 뭐, 꿈이 있으면 좋겠지만, 꿈이 없다고 인생이 망하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예전의 나에겐 가혹한 말이지만, 저는 기한이 없으면 평생 결정을 미루는 사람이어서, 언젠가 마주해야 하는 고민이어서 어쩔 수 없었어요.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스트레스받으면서 결정했을 거예요.
[개발자 🍳]: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저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거 같아요. 예전에 제가 우울한 건지도 몰랐거든요? 지금은 내가 이런 상태구나, 왜 이런 상태일까, 이런 상태를 벗어나려면 예전엔 어떻게 했지 등등 저를 다루는 방법을 알게 된 거 같아요. 제 나이면 저랑 친해질 때도 됐죠~!
[연구자 🍗]: 요즘 대학원이 제 길이 맞을까 하는 걱정을 했어요. 대학원에 입학할 당시 석사 과정이 끝날 때쯤엔 제가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는 제 논문 한 편이 있으면 좋겠다고 목표를 세웠거든요. 그런데 우왕좌왕하다 보니 벌써 박사과정 1년 차가 끝난 거예요. 제가 원하는 목표만큼 성과를 계속 내지 못한다면 대학원 진학을 후회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연구자 🍗]: 좋은 기회가 생겨 연구실 졸업한 선배님들과 만나 고민 상담을 했었어요. 박사과정을 끝까지 완수해서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인지 여쭤봤는데, 박사과정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던 것을 꼽으시더라고요. 순간 머리가 뎅 울리는 거 같았어요. 생각해보면 저는 박사 졸업을 통해 무언가를 얻고자 대학원에 입학한 게 아니라 대학원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재미있고 해보고 싶어서 진학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 목표는 잊고 결과(실적)에만 집착했더라고요.
[연구자 🍗]: 둘 중에 우선순위가 있는 건 아니고 닭과 달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어요. 아무리 과정이 재미있고 유익했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당시의 좋은 경험들이 잘 떠오르지 않고 후회로 남을 수 있잖아요. 반대로 결과가 좋더라도 과정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허무할 수도 있고요. 과정을 즐기되 즐거웠던 그 당시를 기억할 수 있는 증거물(?)로써 결과가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개발자 🍳]: 저도 동의해요. 그렇치만 과정을 즐기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 것 같아요. 어릴때에는 열심히 하면 결과가 잘 나오는 게 당연했지만, 커가면서 열심히 했는데도 결과가 안 나오는 일도 많더라고요. 승진도, 논문도요. 뜻한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결과가 전부인 사람은 실패한 인생이 되겠지만 과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은 과정에서 얻은 게 있지 않을까요?
[연구자 🍗]: 오,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요. 과정을 즐기는 것도, 과정을 기억하기 위해서 좋은 증거물을 남겨놓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아무리 재미있고 하나뿐인 경험을 했다 하더라도 그걸 되새길 수 없는 증거물이 없으면 생각이 잘 나지 않더라고요. 누군가에겐 자신의 논문 개수, 누군가에겐 자신의 연봉, 누군가에겐 git commit 기록, 누군가에겐 일기 등이 증거물인 거 아닐까요? 저에게는 이 느림보가 좋은 증거물이 되어줄 것 같아요.
[개발자 🍳]: 맞아요. '일도 열심히 안 하고 뭐했던 거야!'라고 생각되었던 과거의 느림보 글들을 보면 무기력감에서 벗어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더라고요. 깊은 바다에서 살아남겠다고 제자리에서 발버둥 치고 있어도, 멀리서 보면 가만히 있어 보이는 것처럼요. 이럴 때 누구보다 열심히 발버둥 쳤다는 증거가 필요한 거 같아요. 물론 그 열심히 산 증거를 대라는 사람은 미래의 나겠지만요.
[연구자 🍗]: 결과에 대해 크게 연연하지 않고 박사과정 중에만 할 수 있는 경험을 즐기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기로 결심했어요! 이를테면 하고 싶은 주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던가, 궁금한 연구 방법을 사용해 본다던가 등이요. 대신 이 경험을 언제든 좋은 추억으로 회상할 수 있게 잘 기록하고 정리하려고요. 논문과 느림보로요.
[연구자 🍗]: 글을 써놓고 다시 돌아보니 너무 현재가 아닌 미래를 바라보며 걱정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현재가 있어야 미래가 만들어지는 건데, 현재를 등한시한 채 너무 미래만 바라보며 걱정했던 거 같아요. 너무 멀리 보지 말고 지금을 즐겨야겠어요!
[개발자 🍳]: 고민이 참 많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요즘은 고민이 없는 게 고민이에요. 생각 없이 살아가는 거 같아서요. 고민은 많아도 고민 없어도 고민이네요.